지신에게 묻다
오늘날 건축이 보여주는 인공과 자연 사이의 관계_ 안드레아 지아노티
고대에는 물론, 오늘날까지도 문화는 때 묻지 않은 자연에 큰 가치를 둔다. 실제로 고대 로마 시대 종교에서는 ‘지니어스 로사이’라는 장소를 지키는 수호신을 섬기기도 했다. 오늘날 이러한 초월적 존재는 알바 알토,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와 같은 20세기 건축 거장들의 작업을 통해 새로운 형태를 입은 채 그 의미를 이어가고 있다. 이 대가들의 작업은 자연과 인간 사이의 특별한 관계를 각기 다른 방식으로 표현해내고 있다.
풍경과 일체화된 건물을 디자인하는 방식은 크게 두 방향으로 나뉜다. 기존 풍경에 녹아들어 자연과 완전체를 이루거나, 스스로 새로운 풍경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 주제에 더 깊이 파고들기 위해서는 우선 인간이 전반적으로 어떻게 주변 환경에 개입하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따라서 글 초반부에는 자연과 인공물, 장소성, 지형학 또는 위상학과 같은 관념에 대해 다루고자 한다.
결국, 인간이 만들어내는 모든 것은 인공물이며, 순수한 자연은 결코 어느 누가 만들어낼 수 없다. 그러므로 전형적인 인간의 활동 중 하나인 건축에서 인공적인 것과 자연적인 것은 사실상 명확히 나누기 어렵다고 볼 수 있다. 오히려 인간과 자연 사이의 관계가 더욱 중요하다. 인위적인 풍경이나 공간이 주변 환경과 어떠한 경우에 두드러지고, 동화되는지에 주목해야 한다. 더불어 두 가지 경우 모두 인공적인 작업이 어떻게 자연환경과 관계를 맺는지를 주의 깊게 살펴야 한다.
집 : 인공 개입의 방식
땅을 채우고 비우다 _실비오 까르따
땅 위에 지어진 모든 건물은 풍경과 직·간접적으로 관계를 맺는다. 특히 아름다운 자연 속, 독특한 지형 위에 세워진 건축일 경우 더욱 흥미롭고 다양한 방식으로 자연을 만난다. 실제로 울퉁불퉁한 땅에 들어선 건물에는 융통성없는 딱딱한 공간이 훨씬 더 많이 나타나는 경향이 있다. 몇몇 건물은 땅과 맞닿아 시각적으로나 물리적으로 직접적인 관계를 맺고, 또 어떤 건물은 땅 위에 띄워져 있거나 돌출되는 등 간접적인 관계를 맺는다.
이 장에서는 직선적인 특징이 강하게 드러나는 네 개의 집을 소개하고자 한다. 이 집들에서 곡선은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 건축가들은 여러 개의 매스들을 직각으로 교차시켜 공간을 비우고 채우고를 반복한다. 이로써 공간은 두드러지거나 주변 풍경에 묻어간다.
공간의 배치는 무엇보다 각 공간의 상호작용으로 결정되며, 이는 특히 채워진 곳과 비워진 곳, 건물과 대지 사이를 강조한다. 또한, 내부 공간과 외부 풍경 간의 미묘한 긴장감을 보여준다.
이 글에서는 마치 하나의 암석처럼 견고하게 세워진 건물과 풍경의 관계를 기하학적 관점에서 조명해보고자 한다. 나아가 네 개의 서로 다른 주택을 형태에서부터 세부적인 요소까지 총체적으로 분석함으로써 시·공간적 특성에 대해서도 알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