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정서적인 기억의 표면 _ 파울라 멜라네오
기억한다는 것은 어원상 정신 작용에서 특정 개념이나 이미지를 유지하는 능력을 일컫는다. 기억은 복잡한 관계의 시스템으로 이루어지며, 이는 곧 건축에 대한 각자의 반사신경과 함께 인간의 삶이나 문화 일부가 된다.
“기억은 어떠한 일이 두 번째로 일어나는 공간이다.” 소설가 폴 오스터의 말처럼 기억을 다루는 건축 작업은 이야기 전개를 구성하는 두 번째 기회라고 볼 수 있기에, 건축가는 계획적으로 몇 가지의 지침을 선정하여 도입한다. 과거의 시간과 관련된 특별한 작업은 물리적 공간과 일군의 사람들에 한정된 지역 분위기, 역사 또는 정체성을 되찾는 부분을 우선으로 고려한다.
또한, 여기에는 ‘지니어스 로사이(땅을 지키는 수호신)’와 같은 것이 있는데, 이는 환경, 인간의 존재, 그리고 지역적 수준에서 생명의 근원을 이해하고 동시대적 생활 양식에 대한 의미 있는 새 장소를 만들어냄으로써 얻을 수 있다.
재건, 그리고 재활용은 각각의 작업에서 매우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기존 구성 요소는 같은 기능을 유지하지 않고 재료도 그 자체로 재활용되지 않지만, 이교도 건축물의 석조가 가톨릭 교회 건축에 사용되었듯 그들은 표면에 드러난 역사나 이야기 전개는 빛을 발한다. 이러한 특징은 펠림프세스트로서 일상사를 다시 쓰는 새로운 매개물로 작용한다.
산업시대 부지의 재활용
과거의 산업 부지를 새로운 현실로 변화시키기 _ 톰 반 말데렌
건축의 초점이 새로 지어지는 건물에 맞춰지는 동안, 마치 유물처럼 남겨져 버린 산업 단지나 기반 시설은 점차 많아지고 있다. 이러한 시설들이 폐기되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는데, 문제는 버려지기까지의 기간이 점점 더 짧아진다는 점이다. 따라서 이에 대한 대처 방안을 고민하는 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시대적인 과제다.
이 장에서 다룰 건물들은 버려진 산업 시설들이 다시 한번 도약하는 기회이자, 현재 우리의 사회적, 정치적 기운이 이 시설들의 재생에 꽤 유리하게 작용함을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복원이나 재생에 대한 새로운 접근 방식이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한 것이다. 재활용된 산업 시설들은 우리의 문화적 정체성을 풍요롭게 할 수 있으며, 보다 근원적인 것을 갈망하는 욕구를 만족시켜 주기도 한다. 시간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보여주면서 애초에 어떤 프로그램의 건물들이 지어져야 하는지에 의문을 제기한다. 분명한 것은 창의적인 재해석과 새로운 형식적 시도가 가능한 장소들이 남아 있다는 사실이다. 고착화된 개념과 새롭게 등장하는 개념 사이의 소통을 가능케 하는 장소들 말이다.
변화하는 대학 학과 건물
개성과 기능
지식에 대한 새로운 기념비적 건축 _ 알도 바니니
최근 들어 새로운 공공건물의 유형이 생겨났다. 이는 권력과 종교에 관련된 전통적인 성격을 넘어 지식을 쌓거나 과학적인 연구를 하는 기념비적 특성을 가졌다. 12세기경 최초의 대학이 생겨나고, 15세기경, 같은 용도에 좀 더 세부적인 목적을 가진 건물이 들어서면서 20세기 후반에는 대학 건물이 특정한 유형으로 분류됐다. 여기서 대학 건물은 현대 건축 언어로 표현할 수 있으며, 소위 고전적이라 할 수 있는 데까지 이르렀다. 이렇듯 자리 잡힌 유형 체계의 기본 요소는 주위의 다양한 예시에도 불구하고 강력한 기능적 통합, 장소와 관련된 배움과 연구 환경 조건에 대한 엄청난 관심, 그리고 대학 커뮤니티 내 관계의 활기찬 시스템을 채택하는 환경 및 나머지 사회와의 긴밀한 관계 등을 포함한다. 교육이 이뤄지는 공간, 연구소, 주택, 그리고 휴식, 스포츠 및 여가에 할애되는 사회적 공간은 지식 교환 및 학문적 커뮤니티의 생산성을 강화하는 데 전념한다. 루이 칸의 솔크연구소와 캉딜리의 베를린 자유 대학과 같은 고전적인 예시 이후, 대학 및 연구 건물의 건축 언어는 학문에 할애된 내부 공간과 사회생활에 할애된 외부 공간의 소통을 위해 엘리트주의적 특성을 깨뜨리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