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3 342호_1302

20,000

− 사람들을 물가로 이끄는 다리 _ 뷰호 파스B
− 피닉스 전망탑 _ BIG
− 보코니 대학의 새로운 캠퍼스 _ SANAA
− 야생 속으로 _ 오픈패브릭 + dmau
− 중세 보스니아 역사공원 _ 필터 아키텍쳐
− 거울에 비치는 풍경 _ VAV 아키텍츠
− 새로운 항구의 학생 기숙사 _ CEBRA

언덕 위 변주곡
언덕 위 변주곡 _ 실비오 까르따
− 탱글우드 주택 _ 슈와르츠 / 실버 아키텍츠
− 알가로보스 주택 _ 다니엘 모레노 플로리스 + 호세 마리아 사이즈
− BF 주택 _ OAB-오피스 오브 아키텍쳐 인 바르셀로나 + ADI 아르끼떽뚜라
− X 주택 _ 까다발 & 솔라-모랄리스
− 모래 언덕 위의 집 _ 슈미트 아르끼떽또스
− 바람이 스며든 집 _ acaa/가즈히코 기시모토
− 하나레 주택 _ 스키마타 아키텍츠
− 낙소스 섬의 여름 주택 _ 요아니스 발토야니스 + 퓌비 야닛씨 + 지씨스 코티요니스 +
까떼리나 크리투 + 니꼴라우스 쁠라챠스

벽, 시간을 잇다
혼성에 대한 예찬: 버려진 과거를 다시 만지다 _ 넬손 모타
− 기억을 되새긴 깜삐엘로 _ 뜨란디 스튜디오
− 딸리야 극장 _ 곤쌀로 비을 아르끼떽또스 + 바르바스 로피스 아르끼떽또스
− 두 얼굴의 포초네아 _ OS3 아르끼떽뚜라

엑또르 페르난데스 엘로르사
혹시나 만난다면 _ 엑또르 페르난데스 엘로르사
강렬한 재료의 힘 _ 헤수스 도나이레 + 엑또르 페르난데스 엘로르사
− 베네찌아 공원
− 쌍둥이 광장
− 발데피에로 공원
− 알깔라 대학교의 유전·생물학관

 

카테고리:

언덕 위 변주곡
언덕 위 변주곡 _ 실비오 까르따

건물을 기단, 몸체, 지붕의 세 부분으로 구분하는 방식은 고대 그리스·로마, 혹은 그 이전부터 전해져온 오래된 구성법이다. 이러한 구성 요소들은 나름의 방식으로 도시, 그리고 그곳에 살아가는 이들과 관계를 맺고 있다. 땅에 쌓은 기단은 건물과 길, 건물과 행인을 직접 연결하고, 부피감이 있는 몸체는 그 자체가 도시 조직의 일부가 되며, 하늘과 맞닿은 지붕은 건물의 높이를 결정짓고 건물의 끝을 알린다. 그리고 이 세 요소는 건물의 크기나 용도에 따라 각기 다른 방식으로 얽히면서 건물을 하나의 복합체로 만든다.
그러나 이 가운데 한 가지가 사라지면 어떻게 될까? 특히, 땅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던 기단이 사라지면, 건물에는 무슨 일이 벌어질까? 그런 건물도 여전히 복합체로 봐야 할까 아니면 불완전한 존재로 여겨야 할까? 평평한 땅에 든든하게 자리 잡는 대신 비탈이나 산꼭대기에 불안정하게 놓인다면, 혹은 울퉁불퉁한 땅 위에 떠 있다면 건축과 땅은 어떤 관계를 맺게 될까?

 


 

벽, 시간을 잇다
혼성에 대한 예찬: 버려진 과거를 다시 만지다 _ 넬손 모타

오늘날 백지 위에서 시작하는 건축은 사실상 만나보기 어렵다. 비단 경제적 이유에서만은 아니다. 그보다는 건축 유산이라 지칭하는 대상이 기념비적인 역작에서 보다 일상적인 범위까지 확대된 탓이다.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시간은 여전히 어떤 것을 보존해야 할지 결정짓는 중요한 요인인듯하다. 점점 더 많은 이들이 오래될수록 좋은 것, 보존해야 하는 것이라는데 수긍하고 있다.
따라서 부지에 남겨진 지난 흔적들을 어떻게 다룰 것인지는 이 시대의 건축가들이 풀어나가야 할 중요한 과제다. 폐허는 그중에서도 특히 소중하다. 과거와 어떤 연결고리를 갖고 있다고 생각하기에 더욱 그렇다. 물론 건축가들 역시 폐허에 관심이 많다. 마치 천국과 지옥 사이의 연옥처럼, 예술과 자연 사이에 있는 어떤 대상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인위적으로 지어졌을 뿐 아니라, 자연이 만들어낸 혼성의 걸작이다.
이렇게 버려진 흔적들을 다시 만지는 일은 또 한 번 건축가들의 도전 정신을 자극한다. 이미 자신만의 기운으로 가득 찬 무언가에 새로운 층을 덧대야 하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다루는 접근법도 무척 다양하다. 예를 들면 기념비적인 상징이 되거나 특정한 기능을 맡는 등, 실제적인 역할을 수행하기도 한다. 그러나 보다 성공적인 사례에서는 역사적 가치를 단순히 상품화의 수단으로 여기지 않으며, 그것의 상징적이고 형태적인 가치에 대한 예리한 판단이 선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이로써 폐허 위에 덧대진 층은 폐허가 가진 혼성의 미를 예찬하는 것이다.

 


 

엑또르 페르난데스 엘로르사
혹시나 만난다면 _ 엑또르 페르난데스 엘로르사

다음은 분명한 의도를 가진 선언문이다. 어둠 속에 감춰져 손을 뻗어도 닿지 않는 무언가. 하지만 그곳에 존재한다는 것 만큼은 분명한 무언가에 대한 글이다.
건축가에게는 언제나 그를 따라다니는 말이 있다. 마치 좋은 친구처럼 말이다. 내게도 두 개의 문장이 그런 존재로 남아, 나와 늘 함께 한다.
그중 하나는 마드리드 건축학교에서의 마지막 일 년을 지도해주었던 스승, 프란시스쿠 하비에르 센즈 드 오이사가 들려주었던 얘기다. 그는 우리의 작업을 마지막으로 평가하면서 ‘좋은 건축이란 잘 구운 빵과 같다’고 말했다. 맛있는 빵을 먹을 때 사람들은 오직 그 맛을 칭찬할 뿐, 누가 그 빵을 만들었는지는 궁금해 하지 않는다. 건축 역시 마찬가지다. 건축가의 작업에서는 다른 무엇도 아닌 건축물이 주인공이 되어야 한다. 때문에 나의 스승은 그저 한 덩어리의 빵처럼 누가 구웠는지 알 수 없는 무명의 건축을 제안하곤 했다. 만약 건축이 그의 말처럼 익명으로 남겨질 수 있었다면, 우리는 아마 다른 방식으로 즐거움을 향유할 수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건축 작업 뒤에는 오로지 침묵만 남게 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알레한드로 드 라 소타의 글에서 읽은 것이다. ‘좋은 건축은 우리를 웃게 한다’는 짧은 문장이었다. 소타는 건축가는 낙천적이어야 한다고 얘기한다. 단순히 형태를 만드는 데서 그쳐서는 안 되며, 건축을 통해 사람들의 삶을 더욱 즐겁게 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었다. 사실 ‘건축은 사람을 행복하게 해야 한다’는 것은 참으로 당연한 얘기지만, 안타깝게도 이 당연한 말은 현실 속에서 종종 건축가들의 자만심에 가려지곤 한다.
이러한 두 가지 관점이 내 작업을 이끄는 핵심이다. 곧이어 소개할 두 장의 그림과도 관련이 있는데, 하나는 꾸밈없는 침묵의 건축이고, 또 다른 하나는 미소를 자아내는 긍정의 건축이다.

추가 정보

발행호

C3 no.342_2013 2월호

페이지

208

규격

225mm x 300mm

제본

pur제본+자켓

언어

국어+영어

ISSN

2092-5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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